--- 어느날 백택은 문득 생각했다. '나보다 오래 산 것이 있을까?' 다음 순간 백택은 지구를 벗어났다. 칠흑 속을 신수는 유영해 나아갔다. 한참을 헤엄치다 입을 열어 소리쳤다. "거기요! 아무도 없어요?" 없어요?... 없어요?... 고요히 메아리쳤다. 백택은 덜컥 겁이 났다. 이곳을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둘러 뒤를 돌았다. 정신 없이 팔을 뻗어 출발했던 행성으로 스몄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랬군요." "나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은 다음 자물쇠로 걸어 잠가버렸어." 그리 말하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외로워보였다. 카가치는 그런 그의 이야기를 그저 듣고있었다. - "저도 가게 해주세요." 그의 음성이 웅웅 울렸다. 진동하는 그것이 수면을 찰박거리게 했다. 왜 그곳에 ..
*수위 --- 오니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렀다. 백택은 잠시 벙쪄보였으나 이내 희미하게 웃었다. 뻣뻣하게 경직된 얼굴 너머로 그 속의 긴장과 초조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회색빛이 도는 얼굴이 왜인지 평소보다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받아줄게. 서슴없이 그리 말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오니의 시선은 이젠 되려 의심을 품고 있었다. - "오야, 왔냐." 그렇게 말하는 백택의 얼굴이 무심했다. 그런 후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품의 여자에게 야살스레 웃어보였다. 불청객의 난입에 당황했는지 황급히 자리를 떠나려하는 여성을 붙잡는 남자의 손길이 안쓰러울 정도로 다급했다. 그러한 광경을 오니는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을 위해 문 앞에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문소리의 이후로 가게의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벙쪄있다..
;반응이나 기타의 현상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계系에 가하는 에너지(자극)의 최소치. --- #1. 끈질긴 매달림이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밀쳐냈다. 그 손길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오니는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은 결국 내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하는 자부심이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저 막무가내로 이미 상처투성이인 몸을 몇 번이고 가시투성이 밭으로 들이박아오던 것인지. 꽤나 오랜 시간이었다. 자신은 그저 가늠할 수 밖에는 없지만, 아마도 수명을 가진 존재에게 있어-제 아무리 몇천년을 산다하여도-무시할 수 없는 세월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손을 뻗어오는 오니를 백택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제는 좀 잠잠해졌을까, 이제는 그 마음이 조금은 바랬을까, 그..
--- "꿈틀거림." "...꿈틀거리는 것 말입니까. 태동이군요." "그렇지. 생명의 원초이자, 조건이지." 대화는 극락만월 안,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던 백택이 돌연 말을 꺼내며 시작되었다. 종종 한 번씩 그랬다. 두서없이 생뚱맞은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굉장히 많은 것을 품고있는 듯하기도 했고, 동시에 텅 비어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의 모든 것에서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땅과 바다, 하늘이 생겨난 세계였고, 새카만 우주였으며 곧 시공간 그자체였다. 그럴 때마다 새삼 느끼는 것이었다. 호오즈키는 그러한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내에서 최대한의 대답을 돌려주었다. 미지는 언제나 흥미롭다. 알고 싶고, 파헤치고 싶고, 가지고 싶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
--- 천국에도 계절이 있나, 바보스럽게도 그리 생각하고 말았다. 천계와 저승은 어찌되어도 행성에 위치해 있으니 인세와 같이 태양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따라서 날씨와 계절이 있어 마땅하다. 한편으로 하늘로 솟는다고, 또는 땅으로 꺼진다고 다다를 수 있는 곳도 아닌, 말하자면 다른 차원의 세계이므로 사사로운 물리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지자면 다채로운 인세의 흉내를 내는 것일 뿐이다, 만약 그런 것이 정말로 있다면. 헛웃음이 나온다. 알고 있는데도. 언제보다도 세월의 흐름을 갈구하게 된다. 따스함과 추움, 비와 눈으로써 덮어버리고 싶어진다. 한 줄기 비가 떨어진다. 멍하니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톡, 하고 볼을 때리는 것을 가만히 둔다. 눈을 감는다. '연모하고 있습니다.' 메아리 울리듯..
---- 그만 두지 못하겠느냐. 오니는 우뚝 멈춰섰다. 말투가 아니라, 흐르는 기의 변화를 느낀 탓이다. 이미 너덧 번을 얻어맞아 엉망진창이 된 남자의 콧자락에서 붉은 것이 주륵 흘렀다. 백택은 성가시다는 듯 그것을 소매로 훔쳐 닦았다. 그것은 추호에도 고통이나 두려움의 표시가 아니었다. 그저 꼴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에 얼굴을 구기는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그러한 사실이 더욱 오니의 약을 올렸다. 처음의 그것은 한없이 한심스럽다는 의미의 야유였다. 그러나 그것은 차츰 증오로 바뀌어갔다. 오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건방진 것. 이 내가 누구인 줄 알고. ...... 신기神氣였다. 그것이 둘 사이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니의 한쪽 눈이 찌긋 일그러진다. 흔히 천적 관계라고들 하나, 그것이 한 쪽에게..
*극도의 이과 주의 *현대AU. 카가치와 백택. 과학자(생명공학자) 카가치. *어쩐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연관되는 이상한 느낌. 굳이 말하자면 번외. --- ...그렇습니까. ...믿어주는거야? 즉, 그 말은 즉 당신이 살아있는 화석이나 다름없다는 거지요? 뭐... 굳이 표현하자면. ...당신의 DNA를 채취하고 싶습니다. - 호오... 확실히. 놀라울 따름이군요. ...하하. 카가치는 병에 갇힌 혈액 표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백택은 그저 떨떠름한 표정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을 뿐이었다. 남자의 강한 어필에 못이겨 마지못해 피를 뽑은 것은 어림잡아도 몇 달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대뜸, 자는 사람을 막무가내로 불러내어 왜인지 아무도 없는 음습한 실험실에 앉혀놓은 ..
*시대물AU *세계관 날조(허구) --- 비밀 하나 말해줄까? ...예? 사실 나는, 신수야. 그것이 어느 날이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백택과 호오즈키가 대면하는 모습을 보았노라 하는 가신들이 늘더니, 둘은 어느샌가 마치 둘도 없는 친우인 양 행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그리 이야기하였다. 마치 물과 기름의 형세를 보는 듯하다고. 다른 이는 그리 생각하였다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두 공자가 함께 빠져나갈 구멍은 없을 것이라고. 원수와 친우, 두 사건의 정확한 계기를 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관계는 마치 강물이 흐르듯, 하늘에서 정해놓은 듯 자연스러운 일련의 흐름이었다. 적어도 지켜보는 자들의 눈에는. ...신수라 하시면, 당신의 이름과 같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십니까? 그렇지...
*이과 주의 *백택 과거 날조 주의 --- 갈 곳 없는 외로움은 봄 없는 추위와 같다. 그 중심에 신수는 서있었다. 해는 빠르게 뜨고 달은 느리게 졌다. 시계추처럼 왔다 가기를 반복하는 그것들은 빙글빙글 돌며 바람 소리를 냈다. 그는 조그마한 나무 그늘에 기대어 씩씩대는 그 소리를 몇 십 년 동안 그저 듣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제 키의 언저리에 있었던 그 고대 식물은 모르는 새에 훌쩍 자라 그 꼭대기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몇 십 차례 비바람이 불고 마침내 벼락에 나무가 으스러졌을 때 비로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할 거리를 찾아 헤메었다. - 하늘에서 어느 날 생겨난 신수는 생명 활동과 유사한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끊임없이 물을 마시고, 영양을 섭취하며 휴식을 취해야..